* 심뽈리신부 유물전(제1회 나혜석 생가거리 미술제 연계 전시전)
* 기간: 2009년6월30일- 7월5일 < 수원성지 뽈리화랑: 2008년6월28일 부터 한달간 전시 예정>
* 장소: 수원성지 뽈리화랑 제3전시실
* 심뽈리신부 유물전 준비 및 전시, 소개글: 수원성지 전담신부겸 북수동성당 주임신부 나경환<시 몬>
* 바오로해 폐막제 및 기념제와 제1회 나혜석 생가거리 미술제 연계 전시전을 겸해 열린 유물전 입니다.
심응영(뽈리 데시데라도)신부<1931.5~1948.8.8>
수원성지(북수동성당) 터는 본래 팔부자집터인데, 정조대왕께서 부친 사도세자의 윤릉참배를 위한 8일행차와함께 수원화성 신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전국 팔도의 각 도에서 부자집 각 한 집씩을 선발하여 총 여덟 부자집을 수원화성 안으로 이주시켜 만든 곳 입니다. 모본당인 왕림본당에서 분당될 때 거시적인 안목으로 값비싼 종로 팔부자집중의 3채를 매입하여 본당설립을 하게 되었고 수원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팔부자한옥을 성당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1931년 5월에 제 4대 수원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신 심응영(뽈리데시레다도)신부님은 1884년에 불란서 남부지방 비비에교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1907년 한국에 입국하시어 서산 등 여러곳에서 사목하시다시다 1931년 5월 수원성당에 부임하시게 되셨습니다. 당시 본당교우는 고작 70여명이었습니다.
수원성당에서 무려 18년동안 재직하신 뽈리신부님은 수원화성이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처형당하여 순교자들의 피가 물든 거룩한 땅이며, 처절한 박해의 영향으로 전교사업이 너무나 어려운 것을 아셨습니다. 수원화성에 우후죽순 처럼 밀집되어 있는 무당집, 만신집, 도사집, 보살집 등 각종 우상숭배와 미신행위가 성업을이루고 그와 더불어 기생집 등 유흥업소가 성행하고 있는 수원화성에 주님의 복음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셨습니다.
심뽈리신부님은 전교사업의 전위대인 명도회를 설립하시는 한편, 수원성당가를 직접 작사작곡하시고 첫 주님사업으로 성 미카엘대천사를 주보로 거룩한 수원순교를 기념하고 미신타파를 위한 기념성당으로 수원성전건립사업에 착수 하셨습니다.
심신부님은 충청도 아산 공세리성당 주임신부로 재직하면서 공세리성당을 건축한 같은 파리외방전교회 동료 드비즈신부에게 설계,감독을 맡겨 성전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교무금으로는 어림도없고 자신이 근검 절약하여 모은 돈과 파리외방전교회 지원금 외에도 건축비가 부족하여 고향의 홀어머님이 삯바느질로 푼푼히 모아 보내주신 돈으로 공사를 진행하셨습니다. 마침내 본당설립 9년만인 일제강점기 1932년에 완공되어 그 해 11월 13일 서울 원형근(라리보)보좌주교의집전으로 축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75평의 연와조건물로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수원 최초의 근대식 건축인 수원성당이 세워졌습니다. 하지 6.25전쟁을 거치면서 심하게 파손되어 수차례 보수를 하였지만 역부족이었고 1978년 3월 김남수주교의 고별미사를 끝으로 결국 헐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하여 본당 화단에 중요한 건축구조물들을 파묻어 두었습니다.
예전에는 돈많은 여덟부자가 살았던 팔부자집터이지만 이제는 주님의 진복팔단- 천상 8복의 은총이 내려지는 순교성지로 선포된 오늘에 이르러 옛 건축구조물을 발굴하여 수원성지마당 한 편에 하루빨리 수원성당을 복원하여 소성당과 성체조배실로 사용하고 잃어버린 옛 성당명칭(수원성당)도 되찾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수원성지 전담신부 나경환(시 몬)
수원성지- http://suwons.net/ 북수동성당- http://www.buksu.com/
1. 심뽈리신부 유물전 프랜카드
2. 제3전시실 뽈리신부 유물전
3. west 방향 전시 유물전
4. 심뽈리신부 상체모습
뽈리신부님께서 빈틈없으면서도 인자한 긴수염의 얼굴 표정에서 양떼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목자로서,
끝까지 피신하지 않고 성체조배로 성체를 굳건히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주님의 사제로서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5. 심뽈리신부가 신학공부를 하신 파리외방전교회
해외 박해지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원이다.
심뽈리신부님은 1901년 이곳 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생활과 신학공부를 하셨다.
6. 파리외방전교회 성당외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외부모습
7. 파리외방전교회 성당내부
심뽈리신부가 신학생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하시며 기도하시던 성당의 내부모습
8.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출발”(Le depart des missionnaires )그림
이 그림은 꾸베르뗑(Charles Louis de Fredy de Coubertin : 1822-1908) 이 1868년에 그린 유화이다.
선교사들은 제대 앞에 열을 지어 섰고, 신자들은 제대 앞으로 나와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고 이들을 포옹 하였다.
이 예식 동안에 파리외방전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작곡한 ‘선교사들의 출발을 위한 노래’
(Chant pour le depart des missionnaires)가 울려퍼졌다.
맨 위의 오른쪽부터 성 유스또 랑페르 드 브르뜨니에르(Just Ranfer de Bretenieres), 성 헨리꼬 도리(Henri Dorie),
성 루도비꼬 볼리외(Louis Beaulieu), 성 루까 위엥(Luc Huin)이다.
뽈리신부도 이와 유사한 선교사출발 환송식에 참여하여 당시 조선에 파견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9. 파리외방전교회의 팔각정과 종
각 선교지로 파견된 뽈리신부를 포함하여 모든 선교사들은 이 곳 팔각정에서 동료들과 작별한 후 마차를 타고 보르도항으로
가서 임지로 떠나는 배를 탔다고 한다.
10. north 방향 전시 유물전
11. 심뽈리신부 좌상
심뽈리신부님(뽈리데시데라도1884-1950, 프랑스남부 비비에태생,
6.25때 순교. 수원성당주임역임 1931-1948)과 화가나혜석(1896~1948 수원화성 신풍동 45번지 태생,
무연고병동에서 사망)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을 맞이하면서 수원화성에서 같은 때에 같은 곳에서
각자 다른 무대에서 생활했지만 같은 시대 같은 곳에서 한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겪은 동시대인들로서
모두 비운의 주검을 맞이하였다.
심뽈리신부님의 좌상은 영적 전쟁에서의 대장군다운 용맹한 풍채와 위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12. 심뽈리신부 좌상(교우들과 함께)
젊은 보좌신부와 복사단으로 보이는 어린이들과 노인복사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구수원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13. 26)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대성합/ 27)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소성합(1)
28)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소성합(2)/ 29)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성광
30)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십자가/ 31) 심뽈리신부가 사용하시던 성작
14. 13번 사진 후에 촬영
15. 7) 심뽈리신부 고향 야누스성당 내부-
심신부님이 어렸을 때부터 다니시던 비비에교구 바누스성당 내부
8) 심뽈리신부 고향마을사람들(1995년)-
1995년 4월 북수동성당에서 심신부님 고향방문때 고향인 비비에교구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고향마을 사람들의 모습.
이들 대부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양사람(북수동신자)을 처음 만나 보았다고 한다.
9) 심뽈리신부 고향마을어린이들(1995년)-
1995년 4월 북수동성당에서 심신부님 고향방문때 고향인 비비에교구 바누스마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10) 심뽈리신부 고향민속춤-
1995년 북수동성당 장덕호주임신부님과 교우들이 심뽈리신부님 고향방문하였을 때 비비에교구장께서 환송행사로
공연토록 한 뽈리신부님의 고향마을 민속춤이다.
16.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옆면
심뽈리신부님께서 1932년 일제강점기에 수원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성당을 목표로 당시
공세리성당을 설계하신 파리외방전교회 드비즈신부님을 모셔다가 설계를 하였고, 중국인 건축기술자들이 기초와 시공을
맡았고, 당시 본당과 공소의 교우들과함께 벽돌을 지어 나르며 팔부자집터에 건립한 수원 최초의 고딕식건축이며
근대식 건축의 효시이다.
17. east 방향 전시 유물전
18. 심뽈리신부가 건립한 수원성당 정면
수원성당 앞쪽 양편에 팔부자집 기와집이 보이고 그 사이로 철문으로 된 성당 대문이 보이는데,
성당대문 바깥쪽에 서계신 심뽈리신부님과 그 왼편 으로 교우 두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19. 심뽈리신부 입상
1945년 조국해방과함께 진갑잔치 기념으로 구수원성당 입구에서 찍으신 사진.
전통한복 차림으로 전통모자를 쓰시고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곰방대를 드셨으며,
고무신을 신은 모습에서 한민족의 복음 토착화를 이루시려던 열정이 드러난다.
20. 심뽈리신부건립 수원성당에 걸렸던 종
일제강점기에 무기제작용으로 일본순사에게 하바트면 빼앗길 뻔 했던 구수원성당의 종.
1932년 심신부님의 고향사람이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하여 보내준 종이다. 현재 북수동성당 종탑에 걸려있다.
21. 심뽈리신부 주보 성미카엘 대천사상
뽈리신부님께서 수원지방의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마귀를 물리치는 성미카엘대천사를 주보로 정하시고
성 미카엘상을 제작하셨다.
22. 심뽈리신부 진갑잔치(전신자와함께)
1945년 10월 27일 조국해방과함께 맞이한 심뽈리신부님의 진갑기념 잔치에 본당교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
23. 심뽈리신부께서 창설하신 명도회의 기 <사진>
24. 심뽈리신부께서 창설하신 명도회의 기
심뽈리신부님께서 1931년 수원본당에 부임하자마자 전교사업을 목표로 부인신자들로 구성된 명도회를 설립하시고
명도회기를 직접 디자인하여 만드신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뽀뿌링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25. north 방향 전시 유물전
26.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성당터 바깥쪽 (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1948년 8월 천안성당으로 부임후 사목하셨던 천안성당터. 이곳에서 성체를 굳게 지키시며 성체조배하시다가
인민군에게 납치 되어 1950년 9월 대전에서 순교하셨다.
지금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가 건물이 지어져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27.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터 안쪽 마당
심뽈리신부님이 연행되었던 천안성당은 헐려서 오룡동성당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건물이 들어서 있다.
28. 심뽈리신부가 연행된 구천안성당의 순교 현양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화단에 세워져 있는 심신부님의 순교 현양비
29. 심뽈리신부 북수동성당 기념비- 북수동성당에 세워진 심뽈리데시데리도 신부 기념비
30. 파리외방전교회의 한국순교성인 순교비- 파리외방전교회 팔각정 왼쪽으로 세워져 있는 한국순교성인 순교비
31. 뽈리신부 유물전 제3전시실 복도
32.33. 나혜석생가 거리미술제 연계 전시 포스터와 뽈리신부 유물전 제3전시실 포스터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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